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붕어빵

어느 날이었다. 점심 즈음 미용실에 가서 염색을 했다. 원래는 보통 셀프염색을 하지만 왠지 그 날따라 미용실에서 기분을 내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맘에 쏙 드는 색이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고, 뿌듯한 투자를 한 것 같아 왠지 으쓱했다. 기분이 좋았던 김에 저녁 외출을 했다. 맛있는 밥을 먹고 평소 좋아하는 펍에 가서 (한정)생맥주를 마셨다. 머리는 예뻤고, 배도 불렀고, 맥주는 향기로웠고, 새로 산 코트를 입어서 맘도 몸도 따뜻했고, 옆에는 냥냥 남자친구도 있는 아주 완벽한 날이었다.

찬 밤공기를 맞으며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고 있는데 아까 펍에 갈 때 지나쳤던 붕어빵 노점이 보였다. 생맥주 마실 생각에 들떠 큰 관심 없이 지나쳤던 곳인데 ‘4개 천 원’이라는 문구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2개에 천 원이라던데 4개에 천 원이라니, 미친 가격이다. 그 때 마침 노점에 서 있던 손님과 주인 아저씨의 대화가 들렸다. “팥도 직접 쑨 거예요.” 헉,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와 눈빛을 교환한 뒤 노점으로 바로 직행했다.


“슈크림 2개랑 단팥 2개 섞어서 되나요?”

“당연하죠. 근데 좀 기다리셔야 돼요. 바로 만들어 줄게.”

“네, 기다릴게요.”


슬슬 기다리며 노점 안을 살폈다. 낡은 앞치마를 두른 50~60대쯤의 아저씨는 붕어빵뿐만 아니라 센베 따위의 각종 생과자를 팔고 계셨다. ‘센베 11개에 천 원’ 음? 가격이 좀 이상한데. ‘생꽈배기 1봉지에 천 원’ 음..? 너무 싼데. 여기서 말하는 생꽈배기란, 꽈배기빵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을 가늘고 길게 빚어 튀겨낸 딱딱한 과자다. 보통 2개에 천 원 정도 하는데, 여긴 3개에 천 원이었다. 심지어 엄청 좋아하는 과자라서 안 살 수가 없었다. 꽤나 딱딱해서 통째로 씹어 먹긴 좀 힘들지만, 살짝 부순 다음 와작와작 씹어 먹으면 진짜 맛있는 과자다.



꽈배기
뭐 이런 거. 우유가 생각나는 맛이다



“이거 한 봉지에 천 원이에요?”

“네, 천 원이요.”

“그럼 이것도 한 봉지 주세요!”

“네네, 가져가세요.”


그러고 나서 남자친구에게 “와, 짱 맛있겠다.” 라고 하니, 아저씨께서 들으셨는지 “좋아해요?” 물으시길래 네, 좋아해요 했더니 “많이많이 드세요, 그래야 제가 먹고 살아요 허허”라며 풍파 서린 웃음을 지으셨다. 여기서 1차 찌릿.

붕어빵이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우리가 심심해 보이셨는지 이런저런 말을 거셨다. 꽈배기가 싸지 않냐, 다른 데선 2개에 천 원 받는데 우린 3개에 천 원이다, 노점이니까 그렇게 퉁쳐서 받는다. 여기까진 ‘그래그래 다른 가게는 비싸지만 우리는 싸지? 너 되게 싸게 사는 거야’ 라는 느낌의, 장사하시는 분들 특유의 일종의 자랑인 줄 알았는데 뒤에 덧붙이시는 말이 2차 찌릿이었다.


“그런 데들은 보통 가게니까 사글세를 내지요. 그래서 비싸게 받는 거야. 나는 노점이니까 그냥 3개 퉁쳐서 받는 거예요. 지하철 이런 데도 그래.”


내가 생각한 자랑이 아니었다. 그냥 그들은 비싸게 받는 이유가 있어,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그냥 싸게 파는 거고 나 말고도 싸게 파는 노점들도 많아. 라는, 그냥 비싸게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느낌의 말이었다. 내가 곡해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남자친구와 나는 저렇게 느꼈다. 솔직히 처음 가게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난 아저씨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이렇게 추운 날에, 심지어 방한도 제대로 안 되는 노점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시고-그것도 너무나 싼 가격에-계신 모습에 조금은 마음이 안 좋았던 게 사실이다. 물론 나보다 사정이 나은 분일 수도 있다. 제대로 된 건물 안 가게에서 장사하시는 분들보다 금전적으로 넉넉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론 당연히 가게보다 노점이 운영하기 힘들고, 가게 주인보다는 노점 주인이 금전 사정도 넉넉치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저씨는 나보다 풍요로운 마음을 가진 분이셨고, 멋진 삶을 살고 계셨다. 내가 쉽게 동정할 만한 분이 아니었는데 내 맘대로 안쓰럽다고 생각해 버린 데 대해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붕어빵이 다 구워졌을 즈음 새로운 손님이 왔다. 손님을 보자마자 “붕어빵 맛있어요. 금방 되니 조금만 기다리세요”라고 서둘러 말씀하시더니, 우리 것을 곧 챙겨주셨다. “맛있게 드세요.” 열심히, 멋있게 사시는 아저씨께 진심을 담아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면서 돌아섰다. 그리고 기대보다 훨씬 맛있는 붕어빵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꼭 다시 또 오자고.

2017년 12월 05일에 현지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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